괴담보다 더 무서운 캄보디아 - 베트남 전쟁에 관련된 일화
1978년 12월 25일부터 시작된 캄보디아 - 베트남 전쟁이 터진 직후인
1979년 1월 7일 그러니까 전쟁 13일 만에 수도인 프놈펜을 따고 베트남 군이 입성하게 되었음
하지만 프놈펜에 입성한 베트남 군은 산발적인 저항은 커녕 아무런 인기척이 없이 버려져있자
적이 대규모로 매복한 것으로 생각해 기갑 장비를 앞세워 천천히 시내로 진입하며 만전에 대비하였음
그런데 진짜로 쥐새끼 한마리도 없다는 말처럼 당시 프놈펜에는 사람의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었고
300만 인구의 대도시에 사람이 없다는 것에 오히려 베트남군이 얼어 붙었음
수도에 사람이 없었던 이유는 크메르 루주가 집권 이전부터 꾸준히 수도 프놈펜을 습격하거나
프놈펜으로 이어지는 길들을 차단하고 게릴라 활동을 벌이며 도시로의 보급을 완전히 차단했고
본격적인 크메르 루주가 집권하게 된 1975년부터 미군이 폭격할 예정이라고 사람들을 속여
피난을 유도한 뒤 프놈펜의 모든 인원을 시골들의 강제 집단 농장으로 끌고 갔음
만약 떠나지 않거나 저항을 하면 가족이나 친척까지 찾아내어 무자비하게 처형하며 공포 분위기를 만들었고
설령 순순히 끌려간다고 해도 현장 크메르 루주 병사와 장교들의 독단대로 사람들을 약탈하고 처형하는 일이 잦았고
남녀노소 구분이나 차량이나 마차를 일체 제공하지 않고 목적지 까지 걷게 하였기 때문에
행렬에서 뒤쳐지거나 조금만 이탈하면 바로 처형하였음
이 때문에 프놈펜에서 끌려 나온 인구의 약 15 ~ 25 %가 죽음의 행진 도중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극소수가 프놈펜에 남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곧 도시를 폐쇄, 포위하고 모든 물건을 약탈했으며
혹시 있을 생존자를 찾기 위해 내부를 철저하게 수색했기 때문에 잡혀 죽거나 물도 밥도 없이 말라 죽어야 했기에
이 당시 프놈펜의 민간인 인구수는 0명으로 기록됨
이러한 일 때문에 크메르 루주 이전 최대 인구수가 300만에 달했던 대도시이자 국가의 수도는
베트남 군이 점령할 당시 고작 2 ~ 5 만 명, 기록에 따라서는 겨우 5천명이 있었으며
이들 전부 일반 민간인이 아닌 행정과 군 업무를 위한 크메르 루주의 관리, 군인들 그리고 죄수들이었다고 함
이후 베트남군의 점령지들부터 민간인들의 자유로운 통행이 보장되면서 귀향이 시작되었고
1987년이 되어서야 프놈펜의 인구는 약 70만 명 정도로 회복 되었다고 함








얼떨결에 해방군이 된건가
이거 그거 아니야? 캄보디아 킬링필드.
국민들을 공산주으화한다는 목적으로 수용소에 분산수용했다가
학살로 인구 절반이 사라진 사건.
크메르루즈 군인들이 이때 지식인들 색출해서 잡아죽인다고
지식인 구별방법으로 손에 주름이 없으면 죽이고, 손목시계 차있으면 죽이고,
안경 끼고 있으면 죽이고 식으로 악랄했잖아.
나 예전에 캄보디아 전쟁 참전한 베트남 부사관 출신 아저씨한테 들었는데
캄보디아 쪽은 말도 안될 정도로 정글이라 낮에도 해가 안 보이고
적이 그냥 눈 앞에서 갑자기 나타났네
그리고 우다다다 하고 나면 또 없어지고
웃긴 건 이게 미군이 베트남 정글에서 증언한 거랑 똑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