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2021년 8월 3일. 이날 나는 퀴어 유튜브 채널 <큐플래닛>에 소위 '집게손' 이미지를 둘러싼 소동을 다룬 영상을 업로드한 기억이 있다. 사실 직접 기획을 한 입장에서도 이 주제를 다루는 게 맞는지 촬영 직전까지 잘 확신이 잘 서지 않았다.
(중략)
지금 당장 근처의 조그만 간식을 짚거나 혹은 선물 상자의 리본을 풀거나 아니며 그냥 주먹을 쥐었다 펴보기만이라도 해보라. 문제의 그 손동작은 자연스럽게 취해진다. 이런 방식으로 집게손을 사용하는 사람이 이미 차고 넘쳤다. 한마디로 여기저기 사용되던 '집게손 이미지'를 향한 그 당시 남자들의 불만과 항의는 아무리 좋게 말해도 집단적인 망상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기획자로서 고민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세상이 시끄러우니까 다뤄는 보겠지만 과연 이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이 콘텐츠로 제작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금세 말도 안 되는 해프닝이라 잊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때 영상을 만들던 사람들 중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무려 2년이 지나고서야 같은 상황을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은.
그렇다면 몇 해의 시간차를 두고 돌아온 '집게손 소란'은 달라진 면이 있었을까. 놀라울 정도로 그렇지 않았다. 2년 전과 비슷하게 주로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 항의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사실2023년까지 와서 집게손을 '작은 성기'의 상징으로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회적 상징은 유행을 타기 마련이며 이미 언급했다시피 과거에조차 집게손을 그런 의미로 쓰는 건 그리 보편적이지도 않았다. 주로 온라인과 소셜 미디어의 특정 사용자층에서나 집게손은 여성을 향한 외모 품평에 대한 대항문화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같은 시기에도 전혀 다른 의미와 용도로 집게손 이미지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았다.
사실 음모론의 관점에서 보아도 이 집게손 소동은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가령 1달러의 지폐 속에 프리메이슨의 상징이 숨어있다거나 혹은 모두가 아는 명화 속에 일루미나티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도시전설과 같은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 어둠의 장막 뒤에서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비밀 조직이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들 속에 몰래 자신들의 상징을 숨겨두었다는 것 역시도 허무맹랑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단 이건 재밌고 매력적이다. 그림자 정부를 표방하는 비밀결사의 흔적이라니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는가.
그런데 고작 '한국 남자의 성기가 작다'는 상징을 여기저기 심으면서 은밀한 선동을 하고 있다는 건 어떤가. 지나치게 모양새가 빠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왜 온갖 고생을 해가면서 그런 일을 하겠는가. 일단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정도의 노력할 만큼 한국 남성의 성기 크기에 대해 관심이 없다.
여느 사회 현상에 대해서 그렇듯 이 또한 진지하게 이야기될 필요는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이번 해프닝은 누군가의 노동권과 안전할 권리를 위협에 빠뜨렸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이기는 한데, 발단과 전개를 살피면 민망하기 짝이 없다. 나는 '한국 남자', '성기', '크기'라는 단어를 진지한 표정으로 반복하며 이 사태를 설명할 자신이 없다.
내가 진심으로 궁금하고 의아했던 부분이 있다면 바로 항의를 받은 기업의 반응이다. 2년 전 발생했던 '집게손 사태'에 대한 회사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사과하고 이미지를 수정하거나 혹은 무시하거나. 결론적으로 두 부류의 기업에게 모두 별일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자의 기업들은 애꿎은 손가락 이미지를 수정하고 아마 본인들도 이해가 가지 않을 사과문을 쓰느라 꽤나 고생을 했을 것이다.
집게손에 대한 항의가 떠들썩했던 것과는 별개로 이는 온라인의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지역과 계층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분노도 아니었다. 여기에 앞서 언급했듯 이 논란은 지극히 지엽적인 문화와 심지어 어느 정도의 망상에 기반했다. 항의가 운동으로 발전될 정당성조차 갖추지 못했고 당연히 대중을 설득하여 광범위한 공분으로 발전시킬 여지도 없었다.
2년 전의 상황에서 기업들이 배운 게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물론 가급적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으려 하고 일단 문제 제기가 있다면 자세를 낮추는 것이 위기를 예방하려는 기업들의 태도인 건 잘 알겠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중심에 선 기업 넥슨은 갑자기 자사의 게임에 비슷한 손 모양이 등장하는지 모조리 검수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심지어 문제로 지목된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디렉터는 갑자기 긴급 생방송을 진행해 '맹목적으로 타인을 혐오하고 그런 문화를 몰래 드러내는 것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까지 한다고"
기업의 모든 행보와 발표하는 메시지는 회사의 이미지와 직결된다. 그건 자기 일을 잘할 때뿐만이 아니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도 포함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주로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빗발친 주장은 그 근거나 내용이 진지하게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민망한 수준의 것이었다.
물론 그 항의를 진지하게 취급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내용에 대뜸 동의하거나 이를 지지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인식이 황당무계한 항의를 벌인 이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대하고도 그런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보며 '멋있다'고 생각하는 게 가능할까. 한국만이 아니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져서 전 세계가 다 안다. 이미 작금의 '집게손 사태'는 해외 커뮤니티에서도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그런 사람들이 넥슨이 아무리 거창하게 회사의 목표와 비전을 설명한다고 해도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매우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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