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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잡교대.. | 15/01/28 05:14 | 추천 63

오후 3시 15분에 시간이 멈춘곳, 부헨발트수용소 PHOTOGRAPHY* +767 [31]

원문링크 https://www.ilbe.com/5162539490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zpjYy

이차세계대전 당시, 독일 친위대 소속 군인들이 유대인이나 비적격 아리아인을 색출해 내어 체계적으로 학살했다.

여기서 '체계적'이라 함은 학살극이 야전 장교들의 변덕으로 실행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국가 정책이 열등민족의 학살을 '권고 및 종용'했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여러개의 유대인 강제수용소와 절멸캠프가 생기게 되었다.

2차대전 당시 사상 최대규모의 강제노동과 무자비한 학살이 시행되었던 부헨발트 수용소를 구경해보자.

수용소의 전경.

부헨발트 수용소의 입구. '각자의 것을 각자에게'. 지옥에 온것을 환영한다.

전기 철조망. 초병이 휴가를 얻는 방법은 간단했다. 유대인중 아무나 골라잡아 모자를 빼앗는다. 모자를 철조망 근처로 던진다.

복장이 불량하면 죽도록 맞기때문에 유대인은 모자를 주우러 간다. 초병은 철조망에 접근한 유대인을 쏘아죽이고, 탈주중인 유대인을 사살했다고 보고한다.

새로 들어올 유대인을 수용소 거주자로 등록중이다.

급히 가매장된 시신. 노르트 하우젠 수용소거나 부헨발트 수용소중 하나인데 출처가 분명치 않다.

연합군이 들어왔을 당시의 시체 소각장. Life 매거진에 실렸다.

수용소 일부.

해방직후의 수용자들. 바로 자유의 몸이 되지는 않았다. 일정기간 동안, 영양보충과 의료지원을 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미군의 에스코트 하에 수용소 거주자들이 부헨발트 수용소를 빠져나오고 있다.

경악하는 미군.

부헨발트 메모리얼 동상. 이 동상이 소름끼치는 이유중 하나는, 실제 수용소 거주자의 모습이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부헨발트 메모리얼.

부헨발트의 여성 친위대원.

Clay, Lucius DuBignon Sr "the Kaiser".

일제 코흐는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장을 지낸 카를 오토 코흐의 부인으로,

수용자들에게 성적 학대를 가했고 수용자의 사체의 피부를 수집하여 전등의 갓으로 만드는 등의 기행을 했다.

부헨발트의 마녀 등의 별칭으로 불렸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에 서독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아이하흐에 있는 교도소에서 복역 도중에 자살했다.

부헨발트 힌제르트 SS장교들.

해방 후, 자신을 괴롭히던 군인을 지목하는 수감자.

해방 후 수감자들에게 고문을 당한후. 수용소 초병들.

아사한 수용소 거주자. 피골이 상접했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해방직후 수용소 취침실에서.

수감자의 시신들.

해방 후 영양 보충중인 수감자.

연합군이 수용소를 해방시킨 바로 그시각, 3시 15분에 수용소의 시계가 멈췄다.

박물관을 견학하며 그들이 저지른 일을 끊임없이 '언제나 몇번이라도' 기억하는 독일인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그들의 기억은 1945년 4월 11일 오후 3시 15분에 멈춰 있다.

전후 배상과 관련하여

국가간 법적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지만

2000년 독일 정부와 독일 기업들은

100억 마르크(약 6조원)의 기금을 마련하여

2차대전 당시 독일 정부와 기업들에 강제 징용된 이들에 대한

도의적 배상을 책임지고 있다.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는

바로 그재단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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